새전북신문 역사와 현실을 담담하게 그리고 내리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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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25-04-24 17:06본문
역사와 현실을 담담하게 그리고 내리긋다
이철량 화백, 전주 갤러리 아트이슈프로젝트에서 개인전 '중심(衆心)’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2월 09일 14시10분

이철량 화백이 8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전주 갤러리 아트이슈프로젝트에서 개인전 '중심(衆心, The collective heart)'을 갖는다.
지난 개인전에서 선보인 뭉클한 묵점(墨點)에 이어 인간 세상을 압축 표상한 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먹색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청색으로 느껴지는 연한 회색 바탕에는 뭔가 맺힌 듯한 붓 점 같은 것이 드러난다. 드물지만 다른 색깔로 표현된 작품도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역사와 현실을 열정적이고 격하게 탐하기보단 담담하게 그리고 내리긋고 있다.
그려졌거나 쓰여진 기록으로서의 회화이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닿아 있는 듯 수행하 듯 내리긋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볼 일이다.
'중심(衆心)' 은 '뭇사람의 마음'이란 의미를 뜻한다. 이번 신작들은 처음 본 순간 여러 사람의 마음이 완성을 이룬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단결하면 성처럼 굳이지는 '중심성성(衆心成城)' 사자성어에서 비롯된다.
이는 춘추시대(春秋時代) '국어(國語)'의 '주어 하(周語下)'에 나온다. ‘중심성성’은 여러 사람이 일치단결하면 성처럼 견고해질 수 있다는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주(周)나라 경왕(景王)이 거대한 종을 만들려고 했다. 이 때, 단목공(單穆公)과 악사(樂師) 주구(州鳩)는 이 종은 조화로운 소리를 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낭비한다는 이유를 들어 종의 제조를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왕은 듣지 않고 종을 만들었다.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은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드문 법입니다. 그러므로 속담에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루고,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고 한 것입니다'(對曰, 上作器, 民備樂之, 則爲和. 今財亡民罷, 莫不怨恨, 臣不知其和也. 且民所曹好, 鮮其不濟也. 其所曹惡, 鮮其不廢也. 故諺曰, 衆心成城, 衆口鑠金)
그러나 경왕은 주구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에 경왕이 죽고 나자 종소리가 듣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또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현실을 왜곡시키기도 하고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도 하는 것이 여론이다. 한마디로 ‘여론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로 여론을 존중하라는 교훈이다.
먹의 흔적과 붓질은 물이 흐르듯 숨결이 자연의 순간과 한사람 한사람의 고요한 외침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호흡과 떨림이 공감각적인 찰나의 깨달음으로 우주의 기운과 삶을 연결하는 무한히 반복적인 패턴은 무위의 행위예술 같다.
흔적들이 그의 작품에서 나를 외치고 우리가 함께 외치며 그 울림은 캔버스 화면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
‘또 다른 자연(another natural)’은 독자적 표현과 현대적 감성으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새로운 이상 세계를 '중심성성(衆心成城)' 으로 수행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찍은 점들의 조합이다. 점과 점이 포개어지듯이 중첩되기(layered dot)도 한다. 점은 텍스츄어(texture·질감 또는 감촉)와 일루젼(illusion·환상 또는 환각)이다. 색은 알맹이가 파동 형태로 이동한 빛의 반사에 따른 물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작업의 바탕이 되는 한지는 빛을 머금는다.
작업 태도의 미덕은 ‘정서의 내면’이나 ‘무의식의 미로’를 탐색하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해체적 경험’을 몸에 실어 현대 미술의 구조와 조형 형식과의 접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데에 있다.
작품은 물흐르는 듯한 사유 체계 속에서 만들어져 화면 안으로 주사위처럼 던져진 상태로 투사되어 무리짓듯 또는 덩어리져 부상하는 듯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의 첫 붓 점은 늘 작업실 창 너머 정원에서 시작된다. 정원은 계절과 하루하루 일상의 변화에 따라, 각종 곤충과 벌레, 바람 소리, 햇빛, 꽃 향기로 채워진다.
매일의 비슷한 시각의 소리이되 작가의 인식에 따라 같은 소리가 아니다.
어떤 때는 형상으로 바로 귀에 들어오고, 어떤 때는 그 자체로 음표처럼 화면에 나타난다. 작가의 붓 질은 표현 의지와 괴리가 벌어지면 붓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주객합일 (主客合一)의 작업 자세는 궁극적으로 추상과 구상을 통합한 이미지를 창출하며, 동서양 미술 각각의 정신과 테크닉의 장점을 합한 동서합벽(東西合璧)의 경지에 이른다.
작가는 ‘사상과 존재를 응시하는 창문’으로서의 영상적 공간과 ‘기능적이고 평면적인 모더니스트의 조형 공간’과의 중간쯤 되는 장과 지점을 오가며 세계를 구성하며 구축한다.
사물 그대로의 ‘형사(形似)’보단 작가의 뜻과 감흥을 표출하는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문인화를 여전히 ‘수묵’의 중심에 둔다.
그의 최근 연작 ‘또 다른 자연(another natural)’은 기존의 먹색 일색에서 벗어나 있다. 청색으로 느껴지는 연한 회색 바탕에는 뭔가 맺힌듯한 붓 점 같은 것이 드러난다. 비가 세차게 내려 작업실 창을 때려 흐르는 빗물이 중간에 맺힌 듯도 하고 그냥 도르륵 흘러내린 듯도 하다. 인위적인 도트(dot)가 아니다. 붓질에 따라 물감이 흘러내려 저절로 끝맺음을 한다.
이철량은 ‘수묵’을 사회현상을 표현하는 구상화인 채색과는 구분 짓는다. 대상을 빌리되 자신이 주체인 사유를 드러낸다.
수묵의 현대성은 구상적인 대상이나 현상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재료에서 온다. 작가는 직접 먹을 만들어 작업에 사용하고 있다.
작가가 천착하는 ‘수묵 추상’은 대상이나 현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몸과 종이 사이에 자유자재로 움직여지는 붓질로 표현된다.
서구미술에서 추상표현주의가 개인적 작품 형식을 추구했다면, 이어 온 팝아트는 대중적(popular)인 특성을 지녔다. 팝아트가 시대를 반영하기에 채색화라면, 추상표현주의는 수묵에 비견된다.
작가는 1980년대 한국수묵화운동 기수로 동양화의 지필묵 기법을 강조하면서도 현대적 미학을 추구하는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1952년 순창군 복흥면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이후 1981년 한국현대수묵화전(국립현대미술관), 1992년 선묘의표현-현대한국회화전(호암갤러리), 2015년 80년대 한국미술(전북도립미술관) 등 전국 규모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전북대 예술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1980년대 한국미술사에서 수묵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초기 산수나 자연을 소재로 작업했다. 80년대 중반부터 단군신화의 기본개념인 신시(神市)를 주제로 오랫동안 작업했다. 민족개념을 작품에 도입하고 이를 통해 자연의 본질을 들여다봤다. 지난 2010년부터는 인간을 압도하는 또 다른 자연인 ‘도시’를 캔버스에 그리고 있다.
그는 오늘도 수묵화의 꾸준한 변화와 실험을 통해 현대미술로서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2024년 한국화 부문 허백련미술상 본상에 그를 수상자로 선정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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